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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로 12기 광수 옥순 데이트 결과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좋았던 거 딱 하나 있었네요. 맨 처음 꺼냈던 얘기. 왜 옥순의 게임을 중계한다고 했는지 설명했던 부분. 게임 중계가 플레이어를 돋보이게 하듯이 나도 옥순을 돋보이게 하고 싶다. 마침 내 직업 변리사도 다른 사람의 꿈을 가치로 실현하는 일이고. 좋잖아. 상대에 대한 호감과 직업에 대한 정명의식을 동시에 드러내는. 그 이후로는 처참했습니다.
나는 솔로 12기 광수 옥순 데이트
식당 선택은 광수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요. 무한리필집인 것도 몰랐던 것 같애, 반응 보면. 광수 본인도 식당 들어서자마자 아 이거 아니다 싶었던지 바로 옥순 눈치 보기 시작하잖아요. 게다가 고기를 많이 안 잘라 봤다했는데요. 그러면 옥순이 난 고깃집 아니면 안돼요, 난 칸막이 쳐져 있거나 룸인 덴 싫어요, 라고 말하지 않았던 이상 밑천 다 드러났다고 봐야지.
그 밑천은 우리가 진작부터 광수에 대해 품었던 의혹입니다. 입이 가볍고 말이 앞서 나가는 부류에게 우리가 흔히 가지는 선입견. 저 사람 말 많은 것에 비해 내실이 부족하고 행동력도 딸릴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광수가 스스로 뭘 계획을 짜서 데이트를 구성해보는 것 자체가 어쩌면 위기에요.
그런데 원래 위기와 반전은 종이 한 장 차이잖아요. 말만 번지르르한 줄 알았던 광수가 데이트 장소 선정부터 대하는 태도와 이끌어가는 대화까지 의외로 꼼꼼하고 실속 있는 모습마저 보여준다면 위기가 반전 되는 거야. 그런데 혹시나 반전은커녕 역시나 설상가상이었다.
이게 왜 치명적이냐면 모쏠로서의 미숙함이 아니라 모쏠 주제의 게으름을 들켜버렸기 때문이에요. 얼굴 팩하느라 장소를 제대로 고를 시간이 없었다? 누가 장소 선정을 솔로나라 가서 하래. 모쏠 주제에. 영수가 맛집 가이드 챙겨온 거 못 봤어? 모르면 미리 알아보고 못하면 열심히 해야 할 거 아냐. 그렇잖아요, 여러분.
모쏠이라면 솔로나라와서 이렇게 카메라 앞에서 여자와 데이트하는 것 자체를 다른 출연자들보다 훨씬 더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거 아니에요.내가 아무리 계산하고 또 계산해도 현장의 변수는 차고 넘칠 텐데, 그러면 내가 미리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준비해서 상수로 만들어 두고 그 나머지 낯선 상황을 맞이하겠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 거 아님? 왜 노력을 안 하니. 모쏠 주제에.
다른 분들은 광수가 옥순의 거절 의사를 잘 못 알아듣고 제 멋대로 곡해하는 걸 더 꼴불견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저는 차라리 그거야말로 모쏠로서 자연히 드러날 수 있는 미숙함의 영역이라고 봐서 그렇게까지 탓하고 싶진 않아요.
상대가 거절의 메시지를 낼 때 날 배려한답시고 표현 면에서 수위를 좀 낮추거나 약간이라도 에둘러 가는 구석이 있으면 그 메시지 자체를 애매모호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애매모호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또 다른 가능성으로 윤색되고 마는 매커니즘.
메시지의 표현이 내용을 배신하고, 내게 건넨 상대의 배려를 왜 좀 더 그때 모질지 못했냐는 원망으로 돌려보내는 루틴. 모쏠 특 아니에요?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그 정도 장면은 나올 것을 각오하고, 아니 기대하고 모쏠 특집을 시청한다는 마인드라서. 제 기준에서는 식당 선택에서 이미 광수에 손을 놨어요.
다만 옥순도 후반부에는 칼날이 무뎌져서인지 제대로 덜 썰었던 부분은 있어요. 떡순튀 먹을 때 광수가 직접적으로 자신에 대한 호감 여부를 물었잖아요. 그때 대답을 어떻게 했냐면 ‘밝고 재밌는 느낌을 기대했는데 첫 데이트에서 그 반대의 느낌을 받아서 과부하가 왔다. 나의 이상형은 진중하고 밝은 부분을 둘 다 갖춘 분이다.’로 얘기 했단 말이지.
여기서 이 ‘반대의 느낌’이 ‘진중한 부분’과 유사 맥락으로 읽힐 가능성은 좀 있는 편입니다. 옥순 입장에서 이 반대의 느낌은 단 한번 데이트로 상대에 집착하는 쿨하지 못한 성향을 의미하는 거에요. 그런데 이 텍스트의 구조 자체만 봤을 때는 이 반대의 느낌이 ‘진중한 부분’으로, 즉 광수가 밝은 부분과 진중한 부분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는 거에요.
다른 건 죄다 광수가 오버싱킹 한 건데 둘간의 대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이 부분만큼은 옥순이 오해의 여지를 낸 것도 좀 있다고 봐요. 그러니 광수 목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잖아. 아무한테나 잘 안 준다는 느낌표로 거절의 의미일 수 있는 느낌표를 수이 치워버리고 그저 꽉 껴안은 채로 머리는 달랑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