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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식이 이번에 옥순에게 3개월만 사귀어보자 얘기했습니다. 물론 제가 생각하는 의도로 얘기한 건 전혀 아니겠지만, 전 이게 너무나 영식스러운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는 영식 볼 때 마다 항상 3분 카레를 떠오릅니다. 간단히 전자렌지에 돌려 먹는 인스턴트 식품 말이에요.

 

 

나는솔로10기 영식 옥순 3개월 연애 제안이유

그래서 저는 그 3개월이라는 기간이 영식 자신이 연인으로서 소비될 수 있는 유통기한으로 들렸습니다. 3개월 후는? 진심이라는 저장고가 텅텅 비워져 더는 꺼내 쓸 게 없겠죠. 솔로나라에 있었던 불과 사나흘 동안에 벌써부터 이 저장고의 바닥이 드러나는 게 보이니까요.


제 말이 잘 이해 안 되시는 분들은 영식이 며칠 후 또는 몇 주 후에 옥순에게 하게 될 말들을 예상해봅시다. 똑같은 얘기 반복일 것 같지 않나요? 당장 첫 데이트에서 옥순에게 했던 말, 그리고 이번 데이트에서 했던 말도 서로 비교해보면 별 다를 게 없어요.


옥순에 대한 정형화된 칭찬 패턴, 옥순에게 보내는 호감과 신뢰를 과장하는 경향, 현실적 문제에 대한 낭만적 해결을 도모하는 루틴이 반복될 뿐이에요. 데프콘은 옥순에 대해서는 영식이 진심이라고 얘기하던데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영식은 진심 자체의 깊이가 얕은 편으로 보였어요. 꿍꿍이가 없다기보다는 마음이 얕아서 애초에 꿍꿍이를 숨겨 둘 공간 자체가 별로 없는 것에 가깝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 있잖아요. 만난 지 오래 됐는데도 왠지 모르게 깊은 얘기를 나누기 어려운 사람. 겉도는 얘기만 하다가 그치는 게 그 사람이 아직 내게 마음을 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간혹 가다보면 진심의 깊이 자체가 얕아서 일수도 있거든요.


이런 사람들이 하는 말의 흐름을 잘 들어보면 대부분 의미작용이 수평적으로 일어납니다. 같은 의미의 말을 그것과 대등한 계열의 다른 표현으로 끊임없이 옆으로 옮겨가며 얘기하는 거에요. 즉 표현만 매번 달라질 뿐 의미가 깊어지는 건 없어서 언뜻 겉으로는 화려해보이지만 속 알맹이가 싱거운 편이죠.


이와 반대되는 말의 흐름을 보여주는 사람이 예를 들면 순자입니다. 의미작용이 수평이 아니라 수직으로 일어나는 거죠. 이런 사람과 대화하면 매우 구체적인 언어로 시작해서 점차 위로, 상위 개념으로 타올라가는 식의 흐름이 일어나요.


그래서 점차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주제에 대한 소통이 가능해집니다. 의미가 가면 갈수록 깊어지는 겁니다.

  • 수사학적으로 전자를 '환유적', 후자를 '은유적' 이라고 한다.

 

 

어쩌면 영식 본인도 내심 매력 있고 사려 깊은 연인으로 어필될 수 있는 기한이 상대적으로 짧다는 걸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들어요. 인터뷰에서는 옥순과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진짜 그렇게 자신 있었다면 3개월 드립 나가지 않았을 겁니다.


실은 자신 없고 불안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3개월 안에 승부수를 어떻게든 내야 되는 겁니다. 길게 끌 밑천이 없으니까요. 3분 카레는 3분 안에 완성돼서 3분 카레이겠지만, 시간을 오버하면 전자렌지 안에서 다 터져버릴 수 있어서 3분 카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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